2013년 2월 7일 목요일

힘들다 힘들어

마지막 글을 쓴게 벌써 제작년이네...

그때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마찬가지고 여전히 스트레스 가득찬 생활을 보내고 있는듯 하다.

개인적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자면 역시 고3 수험생활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고등학고 1년 반을 죽어라고 놀다가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 아는데 학년 전체 90명중에 맨날 89-90등을 하고 살았으니...) 몇가지 사건을 겪고 카이스트에 떨어지고 나서 정신을 차리고 1년동안 공부해서 서울대에 붙었으니 (이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다)

암튼 그때 정말 죽어라고 공부한거 같기는 하다. 그만큼 힘들었었고.
문제는 이게 트라우마가 되서 남들 군대 다시 입대하는 꿈처럼, 스트레스를 받으면 꼭 다시 수능치는 꿈을 꾼다는 거다.

이 꿈의 강도도 스트레스 강도에 비례하는지 그래도 작년까지는 내일이 수능날인데 공부 하나도 안해서 어케하나 걱정하는 꿈들이었는데

작년 말에는 "오늘이 수능 당일인데 시험장에 가면서 공부 하나도 안했는데 어케하지 걱정하는 꿈"을 꾸기 시작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나는 재수중이고 오늘이 수능 당일인데 시험장에 안가고 술마시는 꿈"으로 바뀌더니

결국 "삼수하는데 오늘이 수능 당일인데 시험장에 안 가서 어머니가 슬퍼하시는 꿈"까지 업그레이드 되었다.

게다가 꿈속에서 내 나이는 지금과 동일해서 항상 벌써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대학을 못갔나 하는 걱정을 계속 한다.

그러다 그저께는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았는데 우리반 47명 중에서 40등 전교 370명 중에서 350등을 했고, 게다가 나는 현재 4수 중이었다...

성적표를 받고는 아 공부좀 할껄 4년동안 멀 한걸까 4년동안 시간만 버렸구나 라는 절망감과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서 고개만 떨구고 있다가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서도 그 느낌이 생생해서 기운이 빠져서 출근도 못하고 한참을 쇼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어느새 나이는 정말 많이 먹었는데 이룬것은 하나도 없어서 나는 평소에 그다지 느끼지 못하지만 내 초자아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너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거 같다.

2011년 12월 4일 일요일

올해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있다

물론 예전처럼 몸이 힘들고 그런건 아니지만(도대체 어렸을때는 어떻게 한달에 400시간씩 일하고 그랬을까) 아무튼 사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술을 안 마시면 잠을 못자는 상태로 지내고 있다. 사람을 믿고 내가 위해주는 만큼 보답이 올꺼라는 사업부 설립 초기의 생각들이 산산히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잘 해주면 우습게 보는구나 이딴 생각만 들고 더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 사람을 이끌면 안된다고 주구장창 얘기하던 내가 한없이 초라해 지고 있는 순간이다. 잠 못잘까봐 두시간 동안 안주없이 술만 마시고 있는데 어이없음과 자괴감만 내 몸을 감싸고 정신은 더욱 또렸해지고 있다. 회사 생활한지 십삼년 만에 처음으로 개지랄이라는걸 해본게 2주밖에 안되었는데 내일은 또 어떻게 욕을 해야하나 그딴 걱정을 하고있다. 처음으로 화를 낼때 나 자신도 무서워서 다리가 덜덜 떨렸었는데 그 짓을 내일 또 해야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하다.

2011년 9월 26일 월요일

나 이번주 28-30 휴가감

권군 너한테만 얘기하는 고급 정보다. 화이팅.

2011년 8월 22일 월요일

열등감과 질투심

하아...

어제 간만에 고등학교 친구 결혼식엘 갔었는데

15명쯤 만났는데 만난 친구들의 절반이 교수 나머지중 절반이 의사 나머지는 공기업 대기업 회계사 등이었다

대학 친구들은 그래도 이 정도 까지는 아닌데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면 더 위축되는 느낌이 든다

워낙 병신같은 고등학교 생활을 지내고 겨우 대학에 붙어서 학부 생활 내내 놀기만 하다 회사에 취업하고 아직까지 별다른 성과 하나 제대로 못 내고 사는 나라서 이게 네 놈에게 당연한 결과다 라고 얘기해도 할말은 없지만

6년전에 쓴 글에서 "아직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고등학교로 돌아가서 입시 준비하는 꿈을 꾼다"라는 내용이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어제도 또 그런 꿈을 꾼 나를 보면

나란 존재의 알맹이란게 정말 보잘 것 없는 애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렇게 열등감을 많이 느끼고 사는 건가 생각도 들고

암튼 이런 열등감을 질투심으로 승화해서 보란듯이 먼가 이루어 낼 날이 와야 할텐데 말이지

그때가 되면 나도 더 이상 이런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을까



2011년 8월 2일 화요일

자동차 디자인은 쇠퇴하고 있는 것인가?

출처 : 자동차생활 - 예술을 품은 17대의 클래식 향연

뉴스를 보다 보니, 랄프 로렌이 모은 클래식 자동차 17대를 파리 장식 미술 박물관에서 전시중이라고 한다. 8월 28일 까지 한다는데 머 평생 볼 일은 없겠지; 랄프 로렌이 모은 차니까 디자인의 아름다움이야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이건 상상 외로 이쁘다;;

저때는 컴퓨터도 캐드도 없는 세상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멋지게 차를 만들어 냈던 것인가...클래식카 이쁘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이렇게 이쁜 차들은 진짜 오랜만에 본다. 그 시절 영화를 보던 사진을 보던 이런 식으로 포스가 뿜어져 나오는 차들은 못 본거 같다.

물론 아래 나오는 대부분의 차들이 한정판에 두세대 만들었고 하긴 하지만 이정도면 예술품 취급을 받을 만 하다.

아래부터는 사진과 설명이다.

1 Jaguar XKSS(1957)XKD의 뛰어난 성능에 매료된 미국 팬들의 요구에 의해 제작된 일반도로용 모델이다. 50대의 주문을 받았지만 공장 화재로 1957년 1~2월 16대만 제작되었고 이듬해 2대의 XKD 레이싱카가 추가로 XKSS로 개조되었다. 이 중 하나가 랄프 로렌 소유의 모델이다. 일반도로를 달리기 위해 윈드스크린, 루프, 범퍼, 인테리어 등을 바꿨고 핀 디자인이 사라졌다. 최고출력 250마력의 직렬 6기통 3,400cc 엔진을 얹어 시속 250km를 달렸다.


2 Jaguar XK120 Alloy Roadster, 19501948년 런던모터쇼를 통해 데뷔한 XK120은 당초 200대만 한정생산될 예정이었으나 할리우드 배우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누리자 1961년까지 대량생산되었다. 최고출력 180마력의 직렬 6기통 3.5L 엔진을 사용했으며 기술과 더불어 디자인을 중시했던 창업자 윌리엄 라이온즈의 철학이 가장 잘 반영된 재규어 모델로 꼽힌다. 랄프 로렌 소유의 XK120은 6대만 한정생산된 알루미늄 보디 모델 중 하나로 코번트리 컬러가 특징적이다.


3 Jaguar XKD, 1955제트 파이터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독특한 스타일을 지녔다. 1950년대 큰 활약을 펼쳤던 재규어 모델답게 직렬 6기통 3,400cc 엔진으로 최고시속 260km의 고성능을 자랑한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없애고 핀을 세우면서 완성한 유선형의 보디는 고속주행을 위한 결과물이다. 기술적으로도 뛰어나 모노코크 구조에 디스크 브레이크 시스템을 도입했다. 랄프 로렌 소유의 전시 모델을 포함해 10대만 생산된 롱 노즈 버전의 D타입은 기본형보다 시속 15km 빨라 최고시속 260km를 냈다. 1955년부터 57년까지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3연승을 거뒀고 1956년에는 뉘르부르크링 레이스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당시 서킷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4 Ferrari 375 Plus, 1954초기 페라리 모델들이 대부분 그렇듯 375 플러스의 디자인도 제대로 된 설계도 없이 만들어졌다. 이 우아한 디자인은 순전히 피닌파리나의 뛰어난 감성과 숙련된 기능공들 덕분에 완성된 것이다. 자체 디자인팀을 운영하지 않았던 페라리는 당시 명망 있던 피닌파리나를 오피셜 코치빌더로 받아들였다. 3개의 카뷰레터를 가진 V12 엔진은 5.0L에 이르는 대배기량으로 최고출력 340마력을 냈고 4단 변속기와 어우러져 최고시속 250km를 냈다. 1954년 르망 레이스에서 우승을 거둔 스파이더 버전을 포함해 총 5대만 생산되었다. 전시모델의 섀시넘버는 0398 AM으로 마지막 제작 모델이다.


5 Ferrari 250 GTO, 1962페라리 250 GTO는 기술적으로나 예술적으로 페라리가 만든 최고의 모델로 꼽히는 명작이다. 경매에 나올 때마다 세계 최고가를 경신하는 것만 봐도 이 차의 가치를 알 수 있다. 롱 보닛, 스토키 콕피트 등 스칼리에티만의 개성이 넘친다. 39대만 생산되었고 21번째 모델이 이번 행사에 전시되었다. 최고출력 300마력 V12 엔진을 알루미늄 보디에 얹어 최고시속 280km의 성능을 낸다. 1962~64년 GT 챔피언십을 석권한 것을 비롯해 이후 수많은 레이스에서 두각을 나타내 페라리의 명성을 드높였다.


6 Ferrari 250 GT SWB Berlinetta Scaglietti, 19601955년 등장한 250 GT는 분명히 뛰어났지만 당시 라이벌이었던 애스턴마틴과 재규어를 뛰어넘진 못했다. 페라리 엔지니어들은 이 차의 휠베이스를 줄이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1959년 파리모터쇼에 250 GT 휠베이스를 2,400mm로 줄인 숏휠베이스(SWB) 버전을 공개했다.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한 알루미늄 보디는 모데나의 스칼리에티 공방에서 제작되었다. V12 3.0L 280마력 엔진은 960kg의 가벼운 차체를 쉼 없이 몰아붙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 1962년까지 총 167대가 제작되었는데 31번째 모델이 랄프 로렌 컬렉션에 들어 있다.


7 Ferrari 250 Testa Rossa, 1958테스타로사는 이태리어로 붉은 머리를 뜻한다. 때문에 300마력 V12 3.0L 엔진의 캠샤프트 커버가 붉은 색이다. 보디는 카로체리아 세르지오 스칼리에티가 피닌파리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완성했다. 드럼 브레이크의 냉각을 위해 앞바퀴 뒤쪽을 튼 폰툰(Pontoon) 펜더를 비롯해 아름다움보다는 기능적인 부분에 중점을 둔 디자인이 특징이다. 강력한 엔진과 뛰어난 공력특성으로 1958, 1960, 1961년 르망 24시간 레이스를 포함해 많은 레이스에서 페라리에게 우승을 안겼다. 34대가 모델이 생산되어 그 중 14번째 모델이 랄프 로렌의 손에 들어갔다.


8 Ferrari 250 LM, 1964250 P(페라리는 1960~1970년대 초반 프로토타입 형식의 P시리즈를 만들어냈다)로부터 태어난 GTO의 후계 모델이다. 레이싱 참가를 위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엔진이 차체의 중심에 놓여 있어 운전석이 일반적인 모델보다 앞쪽에 들어섰다. 250시리즈의 V12 엔진을 물려받아 최고출력 320마력을 냈고 5단 변속기와 함께 최고시속 295km를 발휘했다. 멀티 튜블러 섀시에 스칼리에티가 디자인한 알루미늄 보디를 얹었고 GT시리즈의 호몰로게이션 규정을 만족시키지 못해 프로토타입 클래스에 참가했으며 1965년 르망에서 우승을 거뒀다. 총 32대가 만들어졌으며 전시차는 그 중 31번째 모델이다. 


9 Alfa Romeo 8C 2900 Mille Miglia, 1938스피드를 위해 정조준된 알파로메오의 역작이다. 트윈 오버헤드 캠샤프트와 2개의 콤프레셔를 단 직렬 8기통 2,900cc 엔진을 얹고 4단 기어를 달았다. 견고한 섀시에 4륜 독립 서스펜션으로 로드홀딩 능력이 탁월했으며 유압식 브레이크 시스템으로 시속 185km에서도 안정적이고 강력한 제동력을 발휘했다. 이태리 카로체리아 투어링이 4대의 2인승 로드스터를 제작해 1938년 밀레 밀리아 레이스에 참가했고 그 중 하나가 전시모델이다.


10 Bugatti 57 SC Atlantic Coupe, 1938
프랑스 자동차 역사상 기념비적인 디자인으로 평가받는 모델이자 호사스럽고 우아한 라틴 룩을 가장 잘 표현한 모델이기도 하다. 직렬 8기통 수퍼차저 엔진으로 최고시속 200km를 냈다. 에토레 부가티의 아들 장 부가티가 디자인한 보디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루프와 윙 부분을 따로 제작해 리벳으로 붙여 완성된 것이다. 총 4대가 생산되어 현재 2대만 남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랄프 로렌(섀시넘버 57591) 소유다.


11 Bugatti Type 59 Grand Prix, 1933
8대만 생산된 모델로 그랑프리 성적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레이스카 중 가장 멋스런 모델로 꼽는다. 우아함과 남성미가 묘하게 어우러져 있으며 피아노 와이어 디자인의 휠이 개성적이다. 최고출력 250마력의 강력한 직렬 8기통 3.3L 트윈 오버헤드 캠샤프트 수퍼차저를 얹었고 타지오 누볼라리를 비롯해 뛰어난 드라이버들이 1933년과 34년 시즌에 이 차를 몰았다. 전시모델의 섀시넘버는 59122. 


12 Alfa Romeo 8C 2300 Monza, 19318C 2300은 8기통과 엔진 배기량을 말한다. 1924년 프랑스 리옹에서 열린 유러피언 그랑프리에서 알파로메오 역사상 첫 메이저 우승을 안긴 P2의 후계자로 비토리오 야노(Vittorio Jano)가 개발한 직렬 8기통 2,300cc 엔진을 달았다. 트윈 오버헤드 캠샤프트와 수퍼차저를 결합해 최고출력 160마력을 자랑했다. 일반도로용 버전과 레이싱 버전으로 등장했고 그 중 레이싱 버전에 ‘몬자’(Monza)란 글을 넣어 차별화했다. 뛰어난 엔진과 섀시에 걸맞게 자가토와 카스타냐를 비롯해 많은 코치빌더들이 보디 디자인에 뛰어들었다. 스쿠데리아 페라리팀(당시 알페로메오의 워크 오피셜팀이었다)의 드라이버들과 여러 레이스에 참가했다. 랄프 로렌 소유의 이 차는 장 피에르가 1932년 로렌 그랑프리를 비롯해 모나코, 타르가 등의 그랑프리에 참가했던 모델이다.


13 Bentley Blower, 1929벤틀리 역사상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모델로 창업자인 월터 오웬 벤틀리가 디자인했지만 실제 이 모델의 제작에 가장 크게 관여한 인물은 벤틀리 보이즈(상류층으로 구성된 벤틀리 레이싱팀)의 핵심 일원이었던 헨리 버킨 경이다. 헨리 버킨은 탱크 같은 보디에 강력한 엔진을 얹은 몬스터 레이스카를 구상했다. 1,930kg이나 나가는 덩치를 재빠르게 움직이기 위해 최고출력 240마력 4.5L 직렬 4기통 수퍼차저 엔진을 올렸지만 실제 레이스에선 그리 좋은 성적을 내진 못했다. 전시차는 수퍼차저를 올린 55대의 모델 중 하나로 1930, 1932, 1933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참가했다.


14 McLaren F1 LM, 1996 많은 전문가들이 20세기 최고의 수퍼카로 꼽는 맥라렌 F1의 르망(LM) 한정판이다. 1995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F1 GTR을 기념하기 위해 5대(프로토타입 1대 별도)만 생산되었다. 랄프 로렌 컬렉션은 그 중에서도 3대에게만 주어진 파파야 오렌지 컬러를 입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부르스 맥라렌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일반도로용 모델보다 75kg이나 가볍고 BMW가 특별히 만든 V12의 엔진출력은 691마력(CV)이나 되어 3.9초 만에 시속 97km에 도달할 수 있었다.


15 Porsche 550 Spyder, 1955타입 356의 영향을 받은 포르쉐의 첫 레이스카로 사고 당시 제임스 딘이 몰았던 차로 널리 알려졌다. 1953년 파리모터쇼에 모습을 드러내 1956년까지 90대 생산되었으며 랄프 로렌 소유의 스파이더는 61번째 생산모델이다. 스파이더(2인승 경량 스포츠카)란 이름은 페리 포르쉐가 직접 붙인 것으로 이 차의 성격을 대변한다. 공랭식 수평대향 4기통 1,499cc 110마력 엔진과 4단 변속기를 결합해 운전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최고시속 218km의 고성능을 자랑한다.


16 Mercedes-Benz SSK, 1930SSK(Super Sport Kurz)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S 모델의 휠베이스를 줄여 만든 고성능 모델이다. 차체의 중간 이상을 차지하는 긴 보닛 가장자리로 수염처럼 흘린 배기 파이프와 뒤로 흘러내린 펜더 및 꼬리 디자인이 특징. 이태리 레이서 카를로 펠리스 트로시의 의견을 모아 영국의 젊은 코치빌더 윌리 화이트가 보디를 완성했다. 직렬 6기통 7.0L 300마력 엔진을 얹었으며 최고시속은 235km.


17 Mercedes-Benz 300 SL Gullwing Coupe, 1955메르세데스 벤츠의 역사적인 모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모델로 1954년 뉴욕모터쇼에서 데뷔했다. 도어가 위로 열리는 독특한 구조는 레이싱카에서 가져온 것이다. 벤츠 엔지니어들은 무게를 줄이면서도 강성을 높이기 위해 로커패널을 거의 차체 중간까지 올렸다. 평범한 도어로는 운전자가 쉽게 타고 내리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렇듯 독특한 구조의 걸윙도어를 단 것이다. 215마력 3.0L 직분사 가솔린 엔진과 4단 변속기를 결합해 뛰어난 동력성능을 냈다.